세밑 거창의 밤거리는 언뜻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군민들은 마음껏 즐길 수가 없다. 지역을 이끄는 양대 축인 군수와 의장이 경쟁하듯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역할과 품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몇 해 전 거창군 공직사회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창군청의 이른 바 ‘풀(PULL) 여비 사건’을 돌이켜 보자…

풀 여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바깥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여기서 그 일의 사실관계를 다시 끄집어내자는 것도 아니다. 본질은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리더십을 얘기하려는 것이니 사실관계는 곁가지로 잠시 밀쳐두고 그때의 일들을 다시 더듬어 본다.

누군가 공무원노조 홈피 게시판에 익명으로 폭로한 글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곧 걷잡을 수 없는 파장으로 번졌다. 커져만 가던 논란에 고민하던 군수의 해법은 놀랍게도 부하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경찰에 고발하는 것이었다.

당시 군청 주변에서는 경남도 감사관으로 근무했던 부군수도 경찰에 고발하는 것을 말리는 입장이었지만, 굳이 군수가 우겨서 전격적으로 고발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내부적으로 수습하는 방법을 궁리할 수도 있었으나 공무원들을, 그것도 집단으로 섣불리 고발 하는 바람에 당연히 경찰 수사와 기소로 이어졌다. 여러 명의 공무원이 오랫동안 법정을 들락거리는 수모를 겪었고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렸다.

결국 재판은 무죄로 끝났지만, 몇몇 애꿎은 공무원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명예에 회복 불능의 큰 상처를 입은 뒤였고 변호사 비용 등 적잖은 경제적 부담까지 고스란히 개인적으로 감당한 것은 물론이다. 대외적으로도 거창군 공직사회 전체가 유례없는 치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된 것이다.

재판이 마무리된 뒤의 단편적인 후문으로는 당시 상황이 시간을 끌수록 군수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에 산하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고발하는 과잉 대응을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들이 나돌았다.

무엇보다 이 일은 공직 내부에서 조직 차원의 큰 어려움이 생겼을 때 리더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나 대응 역량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군수의 의도가 어떠했든 공직사회 내부에는 지금도 그때 보여준 군수의 리더십이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관련 공무원들은 물론, 조직 전체가 불쑥불쑥 트라우마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도 공직사회가 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그때 보여준 리더의 품격을 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1,600억 원에 달하는 군 재정안정화기금의 집행을 두고 곶감 빼 먹듯 했다는 비판이 들끓자 가는 곳마다 항변 섞인 불만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이 기금은 결국 세금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군수의 이 같은 언행은 결국 군민에게 화살을 돌리는 셈이고 그렇지 않다면 과녁 없는 곳에 화살을 날리는 뜬금포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는 어른들의 꾸지람에 철부지마냥 ‘왜 나만 갔고 그래?’ 정도의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그저 군민은 황당할 뿐이다.

이에 뒤질세라 최근에는 거창군의회 의장 또한 곳곳에서 종횡무진(?)하는 모양새로 군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공무원들을 군수 심기 경호에 매달리게 하는 군수나 자리의 무게도 모르는 채 꼭두각시놀음으로 우쭐대는 의장이나 거창군을 이끄는 두 수장이 의기투합(?)한 듯한 모습에 추운 날씨만큼이나 세밑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고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와 군민들의 피로도가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수군거림이 커질수록 군수와 의장이 보여주는 리더로서의 품격이 군민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리더십의 흑역사로 소환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무릇 왕관을 썼다면 그 무게를 견디어야 하거늘 왕관을 쓰고는 완장 정도의 언행을 보인다면 그 부끄러움은 왕관을 씌워 준 군민의 몫이 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표를 준 군민들이 더 이상 고개를 떨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창읍 상림리 아무개
/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공무원 퇴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