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성 : 산신령님, 설도 다가오고 하는데 잘 지내십니까? 밑에 날씨는 상당히 추운데 망실봉은 어떻습니까?
산신령 : 여기도 꽤 춥다. 추워도 매일 거창을 내려다보면서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챙기고 있느니라.

백 성 : 네에∼, 그렇습니까?
산신령 :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 아니겠느냐. 지나치게 까부는 백성은 없는지, 천지를 모르고 설치는 인간은 없는지, 세상에 부끄러움을 잃은 사람은 없는지를 추워도 잘 챙기고 있느니라.

백 성 : 다행입니다. 저는 추워서 활동 못 하고 계신 줄 알고 내심 걱정했었습니다.
산신령 : 백성아, 산신령은 백성보다도 보는 눈이 쪼깨 높으니라. 그런 걱정은 하들들 말고 니가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거라.

백 성 : 알겠습니다. 설 지나 조금만 있으면 입춘입니다. 곧 날씨도 풀릴 것 같으니 건강 잘 챙기시고 올해도 더 많은 활약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술도 좀 적게 드시고 말입니다.
산신령 : 그래야지. 올해는 술을 끊어 볼 작정이니라.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술도 싫다!

백 성 : 아이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런데…
산신령 : 왜?

백 성 : 그런데, 산신령님이 술을 끊으면 긴장하는 백성들이 많을 텐데 괜찮을까요?
산신령 : 내 술 끊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더냐?

백 성 : 술을 안 마시면 정신이 맑아져 더욱 잘 보일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산신령 : 올해는 세상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생각이니라. 술 끊고 대신 독서에 열중해 볼까 하느니라.

백 성 :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산신령 : 무슨 말? 왜 안 된다는 것이더냐?

백 성 : 술 끊는 것까지는 좋습니다만, 독서는 안 됩니다.
산신령 : 아니, 왜?

백 성 : 독서까지 하시면 세상을 빗대어 풍자하는 글이 더 찬란할 것 같아서 그러하옵니다.
산신령 : 허허, 별걱정 다하는구나! 지금까지는 아래 시처럼 아무렇게나 살아왔지 않았느냐. 그래서 정신 좀 차려 보려고…!

我無來道(아무래도)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晝勞夜酒反(주노야주반)
낮에는 일 밤에는 술이 되풀이되고

無念去一日(무념거일일)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갑니다

盞虛炷火消(잔허주화소)
술잔이 비고 심지의 불도 사라져 갑니다

無可無不可(무가무불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