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경감·거창경찰서 112치안상황팀장
24절기 중 15번째인 백로(白露)가 지났다.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밤기운이 내려가면서 풀잎이나 물체에 흰 이슬이 맺히고, 하늘이 맑아지며 가을 기운이 완연해진다는 절기다. 피부로 느끼기는 아직 이르나, 달력은 9월, 가을의 문턱 앞까지 와있다.
공직 생활을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초중고 시절을 거창에서 보내고 사회생활, 직장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과 동고동락 해 왔다.
학창 시절부터 거창은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줄곧 이야기 들어왔다. 가뭄이나 풍수 등 재난 피해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라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할 정도다. 행복한 고장에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예전에는 도서벽지(島嶼僻地)라고 불리어, 오래전 관직자들이 첩첩산중 골짜기 거창에 부임해 오면 생활하기에 힘들어 울고, 떠날 때는 정들어 아쉬워 두 번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서부 경남 최고의 거창한 지역으로 발전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참 좋은 곳이다. 거창의 옛 이름은 거타, 거열, 제창, 아림으로 불리다가 현재의 이름인 거창으로 불리고 있다. “살다”의 뜻인 거(居)와 “번창하다” 의미가 있는 창(昌)으로 구성되어 살기에 딱 좋은 고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거창군 인구는 대략 6만 명이고 거창읍 소재지 인구는 4만 명이다. 군 단위 인구로는 제법 많은 편이다. 인구가 많으면 치안 수요도 많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오늘도 명당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살아간다.
최근 TV와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 중대한 뉴스거리도 시골 지역이지만 일어나고 있다. 또한, 각종 교통법규 위반, 폭력, 변사, 사기, 음주 운전, 집회, 보이스피싱, 스토킹, 가정폭력, 교제 폭력, 성폭력 등 대도시 못지않다.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관계성 범죄 즉, 사람과 사람 관계로 인하여 일어나는 범죄가 하루에 수십 건씩 112에 접수된다. 부부간, 부자간, 동료 간, 상하 간, 선후배지간, 지인 간 등등…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는 사건·사고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 법규를 어긴 위반자, 상대의 손해를 입히게 한 가해자 모두 이익보다는 손해를 본다. 얼마나 일상의 행복이 중요한가 깨닫게 된다.
이런 평온함과 행복은 마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목적을 정하고 인생의 방향지시등을 켜야 얻어진다. 차량을 운행하는 때도 마찬가지다. 좌측으로 갈지, 우측으로 갈지 명확하게 깜빡이를 켜야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며 상대방 역시 예측하여 방어운전을 한다.
신호가 있는 교차로나 회전교차로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진입하여 반대편 차량이나 뒤따르는 운전자들은 깜짝 놀라 험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이렇듯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있고 또한 자신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항해하는 선장이 조타(操舵)를 잘못하면 배의 항로는 이탈하여 바다의 미아가 되듯이. 인생의 방향지시등과 차량의 방향지시등을 켜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바쁘게 살다 보면 조그마한 부분에 소홀해질 수 있다. 바쁠수록 한 번쯤 멈춰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다 보인다. 느낄 수 있고 반성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일상의 평온, 일상의 행복과 방향지시등 한 번쯤 머릿속에 담아 두고 생활했으면 한다.
2025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