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부실한 선진국 없어, 미래 최고 직업은 농업”

거창군민신문 승인 2015.12.22 09:14 | 최종 수정 2020.10.23 15:17 의견 0

거창농업의 현장지휘관 - 이재영 농업기술센터 소장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습관 - 공직자로서 지켜온 가장 큰 자세
농업인도 공무원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치열한 생존경쟁

88고속도로라는 이름이 3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죽음의 고속도로라는 악명은 22일 4차선으로 확장·개통되면서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인근 대도시와의 시간적 거리를 좁히면서 상권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시기에 묘하게도 한·중 FTA가 12월 1일 국회를 통과했다. 수출기업들은 경제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농민들은 울상이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88고속도로와 한·중 FTA가 데자뷔되면서 거창의 상업과 농업에 대한 걱정이 겹쳐진다. 이런 걱정으로 거창군의 농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재영 농업기술센터 소장(사진 가운데)을 만나 고민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 현재 거창군청 내에서 재직기간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예, 1975년도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그 해 12월 1일자로 발령을 받았으니까 이제 만 40년이 지났습니다. 같이 임용 받은 동기가 세 분 더 있습니다”


- 공직생활이 많이 남지는 않으셨겠네요.
“이제 6개월 남짓 남았으니 손으로 헤아릴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를 바라고, 지금까지 공직 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거나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좀 해 주시죠.
“제가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했다’라는 식의 자랑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전해주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86년도 겨울로 기억됩니다만, 내무과에서 근무할 때 도지사 방문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시던 과장으로부터 최상품의 사과 2상자를 선물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농협에 주문한 사과를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왕겨가 담겨있는 박스에 사과를 넣었는데,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차는 곧 떠나야 하는데,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지요. 급히 농협으로 달려가서 다시 작업을 해, 겨우 시간을 맞추었습니다. 이 일로 저는 어떤 사소한 일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습관이 지금까지 공직자로서 지켜온 가장 큰 자세였습니다”


- 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부임하신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올 1월에 발령받아 왔으니까 아직 1년이 조금 안 됐습니다”


- 소장으로 근무하시면서 그 동안 느낀 점이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까
“농업기술센터는 80여명이 근무합니다. 농업발전을 위한 기획, 현장관리, 민원처리 등 농정의 전반을 챙기는 곳입니다. 농업환경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도 공무원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을 거쳐 최첨단 농업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대외개방, 소비자 트렌드, 기술변화 등에 뒤처지지 않도록 공부하고 현장에 접목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12월 1일 한·중 FTA가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농업부분에서는 다른 FTA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걱정이 많습니다. 위기 측면에서 우리지역의 농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예, 맞습니다. 농업에만 한정하면 한·중 FTA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걱정이라는 점을 고백하고, 또 농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더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 고령화입니다. 영세한 고령의 농업인은 변하는 환경에 더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 농업의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때 필요한 것이 묘수인데, 바둑에는 ‘묘수를 두지마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몰리지마라는 뜻일 겁니다. 묘수가 없으면 무리수를 두는 법이죠. 이런 생각을 갖는 자체가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반증이라 봅니다.
“예, 맞습니다. 마땅한 묘수도 보이지 않고, 우리사회의 마지막 방어선인 행정이 무리수를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군단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에 분명한 한계도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기금을 조성해서 지원한다고 하지만 근본적 대책은 아닙니다. 교역이 비교적 어려운 신선농산물의 경쟁력 확보, 차별화된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서 가공, 판매까지 접목하는 6차 산업 기반 확충 등으로 더 넓어진 시장에서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88고속도로 확장·개통이 농업부분에서는 기회요인이 되도록 다각도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선도적인 농업인들과 연구 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성공적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또 하나의 위기로 고령화를 들었는데, 대책을 세울 때는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세우는지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놓고 대책을 세우는지, 어떤 대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령화 문제는 농촌지역의 전반적인 문제이고, 면단위로 가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대부분의 면이 40%내외의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고, 신원면은 49%에 육박합니다. 고령화 문제는 농업으로만 접근할 수 없고, 복지와 보건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젊은 층이 농업에 더 많이 진입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세계적인 투자자 ‘짐로저스’의 “농업이 앞으로 미래 유망산업이 될 것이다. 다른 산업은 시작했다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농업은 영원한 산업이다. 6차 산업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젊은이들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농업에 종사하면 부를 창출할 수 있고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래의 최고의 직업은 농업이다”라는 말을 빌려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얘기를 듣다보니 고민들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짧게 부탁드립니다.
“우리농업은 빈혈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현장은 더욱 암울합니다. 그러나 선진국 중에는 농업이 부실한 나라는 없습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농업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국 위험한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라는 인식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행한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위기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덩치를 키운다. 그러나 유능한 검객은 수세 속에서도 항상 공세를 노린다. 이재영 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우리농업의 현장지휘관이다. 인터뷰 내내 뒤적이던 수첩에는 고민의 흔적이 빼곡하다. 지면의 한계 상 핵심부분만 간추렸다는 점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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