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거창군민신문 승인 2020.10.31 21:31 | 최종 수정 2020.11.01 16:29 의견 0


거창의 아들 김태호 의원이 드디어 칼을 뽑았다. 그가 칼을 뽑아들자 보수층이 요동치고 있다. 김 의원은 작금의 정치 현실에 대해 “헌법의 가장 중요한 기초와 대들보가 될 공정과 정의의 가치, 그리고 도덕의 가치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며 “우리는 이런 가치를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꼭 맞는 말이다. 지금 나라꼴이 이게 뭔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은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를 내지 않도록 되어 있는 당헌을 고쳐서라도 후보를 내겠다는 작심이다. 당헌은 뭔가. 국가로 치면 헌법이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 때 만든 당헌이다. 당헌을 불가피하게 고치려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모양새 좋은 설명을 하고 그럴 듯이 설득해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쯤은 하고 그래야 하지 않는가.

그 뿐인가.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편 가르기에만 바쁘다. 예전의 정치는 안 그랬다. 의리도 있었고, 낭만도 있었다. 스스로 물러날 줄도 알았다. 의리를 실천함으로써 발휘되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지금 정치인들의 의리는 아침에 밥에 비벼 먹고 국에 끓여 먹고 나오는 모양이다. 그래서 없는 모양이다.

지난 국정감사장에서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자기 편 장관 감싸기 바빴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음 임명할 때는 그렇게 예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니 이제는 사정없이 가격을 해댔다. 그때는 맞고 지금 틀리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그때는 맞았는지 지금은 왜 틀리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때는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도 틀렸더라, 그래서 착각을 했던 모양이라고 반성하고, 식견이 짧았다고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쯤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은 그냥 미운 모양이다. 자기 말들 안 들으니 그냥 미운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예쁜 며느리라도 시어머니 말을 안 들으면 밉게 마련이다.  

과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중엔 실정법 위반이 아니어도 물러난 사례가 여럿 있다. 27년 전 박희태 법무부 장관이 그랬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당시는 청문회 제도가 없었던 시절 그는 취임 10일 만에 사퇴했다. 딸이 대학에 특례입학했다는 시비에 휘말리면서다.
미국에서 태어난 박 전 장관의 딸은 3살 때 귀국해 줄곧 이중국적을 유지하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그러고 이화여대에 외국인 특례로 합격하자 편법입학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장관보다는 사안이 훨씬 단순했고, 당시 대입제도의 맹점을 최대한 활용한 편법이긴 했어도 위법은 아니었다. 김 대통령도 재신임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도 박 전 장관은 “제 문제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과천 청사를 떠났다(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많이 쓰이는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처음 쓴 저작권자가 박 전 장관이라고 한다).

어둠은 진실을 감출 수 있지만 없애지는 못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진실은 멀어진다. 명백한 진실은 날선 회칼 같은 명징하고 예리한 지성의 분발에 의해서만 시추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은 거짓보다 복잡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 대신 부드러운 거짓에 매혹된다. 우리는 지금 부드러운 거짓에 유혹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작금의 정치 현실을 믿겠는가. 대깨문 말고는 말이다.

딸하고 버드나무는 자리를 잘 잡아야 하듯이 정치도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는 아직도 저러니 늘 걱정이다.
시대가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 시대는 생각하고 성장하며 완숙해진다. 사람이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대가 김태호라는 인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정용 /한천수오미자연구소장, 경영학 박사

 

저작권자 ⓒ 거창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